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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사흘간의 동행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8.07.23 조회: 985
  
▲ 민통선을 나가는 버스 우리 대원들이 함께 탄 버스가 검문소를 지나 민통선 바깥 쪽으로 나가는 모습이다.
ⓒ 임아연
민통선

“북쪽을 향해 사진을 찍으시면 안 됩니다.”

“지정된 길 이외로 걸으시면 안됩니다.”

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계속되는 군인의 검문과 길가에 핀 꽃 한송이조차 사진촬영이 금지되는 현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철책선과 역삼각형 모양의 지뢰매설 경고판.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통행권은 정작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 앞에서 무기력해졌다. 한반도의 절반은 마음 놓고 발 한 걸음 내딛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무게감 아래 캠프는 사흘간 이어졌다.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등 총 13개 단체가 후원하고 통일교육협의회가 주최한 이번 통일캠프는 벌써 네번째다.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2박 3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모인 80여 명의 대학생들이 ‘평화로 한마음, 통일로 한걸음’이라는 슬로건 아래 경기도 파주 및 연천, 강원도 철원 및 화천 등 분단지역 일대 탐방에 함께했다.

  
▲ 각서 민통선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사진촬영을 하지 않겠다' 등의 내용이 적힌 각서까지 써야 한다.
ⓒ 임아연
민통선

망원경을 통해 보면 북한 주민의 움직임까지 보일 정도로 북한과 매우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도라산 전망대와 도라산 역, 그리고 임진각.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이곳들은 서울에서 자유로를 따라가다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분단의 현실과 전쟁의 아픔이 이렇게나 가까웠나’ 싶을 정도다. 

차를 타고 조금 더 북쪽 내륙으로 가면 경기도 화천의 태풍부대가 있다. 여기에는 ‘남방한계선’이라는 녹슨 철책이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지 못한 채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손에 잡힐 듯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북녘 땅은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답답하기만 했다. 그리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한국전쟁 당시 전장의 고지로서 이 지역을 설명하는 장병의 입에서 나온 ‘아군’과 ‘적군’이라는 말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을 참 불편하게 만들었다.

  
▲ 신탄리역 남쪽 최북단 종착역인 신탄리역.
ⓒ 임아연
신탄리역

다음 찾아간 곳은 경원선의 남한 측 최북단 종착역인 신탄리역이다. 북쪽으로 철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 철길 끝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적힌 조형물이 나온다. 끊어짐 없이 흐르는 개울물과 만발한 꽃들, 그리고 들풀들은 이미 저 너머까지 계속되는데 이 모습에 시샘이 날 정도다. 

첫째 날의 여장을 풀 곳은 강원도 철원 대마리다. 이곳으로 이동을 하면서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의 문은영씨는 “이곳에는 대인지뢰로 인해 죽거나 다친 피해자가 많다”며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지뢰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의 사후 대책도 너무나 열악한 실정”이라고 현재 대한민국의 실태를 얘기하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처럼 역사의 아픔이 있는 곳곳에 대원들의 발길이 머물고, 머문 그 자리에 꽃이 피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어진 춘천 MBC 전영재 기자의 특강에서는 DMZ 지역의 생태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DMZ에서는 하늘과 땅, 자연이 먼저 통일을 이루고 있다”며 “이 모습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풀 한포기 나지 않을 것 같던 전쟁의 상흔으로 가득했던 이 지역에서 자연이 스스로 다시 살아나고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함께 월동하며, 가을엔 연어가 고향을 찾아 산란하러 오는 곳”이라고 그는 철원지역 DMZ를 설명했다. 분단 현실이 가져온 또 하나의 것은 손대지 않은, 손 댈 수 없는 자연이었다. 

  
▲ 노동당사 폭격으로 인해 다 부서져 흉물스럽게 남은 노동당사의 뒷쪽 모습.
ⓒ 임아연
노동당사

또한 이튿날엔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유명한 철원의 노동당사에 갔다. 50여 년 전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이곳은 너무나 흉물스러웠다. 탱크가 지나가면서 다 부수어진 계단과 겨우 건물의 틀만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고 내부는 거의 깨어져 버린 곳곳에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신음이 함께 서려있었다.

이후 승일교를 건너면서 굵어지던 빗방울이 급기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적셔왔다. 한참을 고통에 몸부림치며 아파한 우리 민족의 눈물처럼 그렇게 서럽게 내리는 빗속을 걸었다.

강원도 화천 민통선 안 산골짜기로 깊숙이 들어가니 부모님 면회도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민간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된 백암산이 있었다. 여느 곳보다도 철저한 검문과 10여명의 군인이 함께 동행하며 대원들은 이 산을 약 다섯 시간 동안 행군했다. 산 중턱에 다다를 수록 거세지는 빗방울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오후 3시부로 호우주의보 발령이 났단다.

하는 수 없이 북한 꽤 먼 곳까지 조망이 가능하는 전망대까지 오르지 못하고 백암중대에서 발길을 돌렸다. 생각지도 못한 강행군으로 인한 다리 통증은 물론이고, 유독 강원도에서만 게으른 여름 날씨 탓에 비에 젖은 몸을 덜덜 떨기까지 한 고된 하루를 대원들과 나눈 술 한잔으로 풀어냈다.

다음 날 아침.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안동철교에 다다랐을 때 즈음 그때까지도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날이 개기 시작했다. 조금 더 산 깊숙이 들어가자 엄청난 규모의 '평화의 댐'이 보였다. 한국전쟁의 마지막 상징물인 평화의 댐은 1987년 착공 당시 임남댐(금강산댐)을 이용한 북한의 수공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국민들에게 댐 건설 비용을 거둬들여 만들어졌다. 이후 임남댐의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되면서 2005년 완공됐는데 이는 발전용이 아니라 단순히 홍수 조절용 댐이다.

따라서 우리가 평소에 볼 수 있는 댐처럼 안쪽에 물이 가득 차 있지도 않고 방류할 수 있는 수문조차 없다. 평화의 댐 건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치적 ‘사기극’이냐,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냐에 대한 의견이 아직도 분분하다. 하지만 강원도 화천 일대의 대자연을 파괴한 자리에 어마어마한 시멘트 덩어리를 쌓아 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우리 현실과 같았다.

  
▲ 철길에 쓰여진 간절한 마음 신탄리역을 지나는 철로에 누군가가 '통일기원'이라고 써놓은 이 말이 간절하다.
ⓒ 임아연
철로

사흘간의 캠프는 아쉬움도 적잖이 남겼다. 우리나라 곳곳의 분단지역을 돌아보며 이렇게나 넓은 지역이 아직도 그 상처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욕심을 낸듯한 캠프 코스와 일정은 정작 ‘통일’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고 함께 나눌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평화의 댐에서 있었던 두어 시간의 토론시간만이 전부여서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하는 식상하지만 근본적인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니던 곳곳마다 끊임없이 이어진 철책은 두 동강 난 우리 현실을 가슴 아프게 보여줬다. 학창 시절 북녘을 바라보며 ‘동포’라 부르던 젊은 청년들은 이제 마주선 ‘적군’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민간인보다 군인을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이곳 민통선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을 넘어선 비장함마저 흐를 정도다.

매일 밤마다 켜지는 촛불로 나라에 바람 잘 날 없는 요즘, 이념과 이데올로기 시대가 종식된 지 한참이 지났건만 아직도 곳곳에서 ‘좌파’, ‘빨갱이’라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우리 아픈 역사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출처 : 오마이뉴스, 임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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