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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녹둔도를 잊었는가!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8.07.24 조회: 922

우리땅 녹둔도를 잊었는가!

 

엉겹결에 잃은 땅

우리땅 녹둔도는 1860년 철종 11년 `엉겹결'에 러시아 땅으로 편입되어 버렸다. 영국 프랑스와 청나라간 벌어진 아편전쟁을 러시아가 중재하면서 그 대가로 청나라는 러시아에 연해주 700리라는 광활한 영토를 내준다. 그때 연해주 끄트머리에 있던 우리땅 녹둔도도 딸려들어갔다. 섬이었던 녹둔도는 이때 이미 홍수로 인해 토사가 쌓여 연해주로 육지화 되어 있었다.

이때 잃은 녹둔도는 고종 때 찾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고종은 1882년 서북경략사 어윤중에게 녹둔도 실사를 명하였다. 그리고 1889년에는 청국의 심계(審界)위원회 오대징에게 국 경계(國 境界)를 재심하여 녹둔도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대징은 이를 묵살했다.

녹둔도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문서에도 보인다. 1890년 일본 영사 立田革이 일 외무성에 보고한 비밀문서에 "녹둔도는 한국령으로 한국 정부가 러시아 공사에게 섬의 반환을 요구했고, 러시아 공사도 이 문제를 본국 정부에 보고하여 알려주겠다고 한 바 있으나 아직 통보는 없는 것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한은 녹둔도 귀속문제 러에 제기해야

그러나 이후 녹둔도에 대한 국토회복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현재 정부도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눈에 보이는 활동은 전무한 상태이다.
다만 이형석 소장 혼자서 연구를 통해, 또 對 정부 탄원서를 통해 녹둔도 반환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노태우 정권 때 고르바초프가 제주도를 방문하자 노태우 내통령에게 녹둔도 반환을 요구해야 한다는 탄원서를 보냈다. 이후 옐친 대통령에게도 같은 탄원서를 보낸 바 있다. 한국과 러시아는 언젠가 이 땅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녹둔도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정부도 북한이 러시아측에 정식 문제 제기를 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방천마을- 이 마을에서 연육된 녹둔도와 두만강 하구가 보인다.

1937년 소련은 극동의 연해주에 있는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하였다. 1925년 25만명이던 한인들은 강제 추방 이후 18만명으로 줄어 7­8만이 행방불명되었지만 여기에 대한 진상 조사도 없었다. 또한 이후 소련의 6.25 참전,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이 있었던 것을 이형석 박사는 남달리 보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녹둔도 반환을 염두에 둔 장기적이고 신경질적인 러시아의 대비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혐의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88년 하천 연구소를 설립해 지금까지 백두산 7번 중국은 14차례나 방문하였다 .

중국·러시아·북한의 국경선비인 토자비(패).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2km 지점에 녹둔도가 위치하고 있다.

녹둔도 답사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녹둔도에 대한 국경분쟁이 있을 것을 예상해서인지 외국인의 접근은 일절 금하고 있었다. 다만 북한 . 중국 . 러시아의 국경선이 있는 방천(防川)을 어렵사리 방문해 그 곳에 서 있는 토자패(土字牌) 앞에 서서 저 멀리에 있는 녹둔도를 짐작해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토자패가 방천에 서 있는 것은 바로 녹둔도가 우리 땅이라는 방증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경은 강을 경계로 하여 정해지는데 토자패가 방천에 위치한 것은 녹둔도가 우리땅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이형석 선생은 녹둔도가 우리땅인 것은 간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명확한 것이다고 말했다. 간도가 우리 땅으로 표시된 고지도는 전무하지만 녹둔도는 분명한 우리 땅이었고 그것은 각종 문헌에서도 나오고 있으며, 그 땅을 청나라가 부당하게 러시아에 넘겼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슴섬 녹둔도

섬의 크기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아국동국여지도에 의하면 `남북 70리 동서 30리'라고 되어 있다. 남북으로 28킬로미터, 동서로 12킬로미터 정도이니, 여의도에 비교할 바 아닌 큰 섬이다. 녹둔도는 다산 정약용의 「대동수경」에 사차마도(沙次麻島)라고 했다. 사차마(沙次麻)는 사슴이라는 뜻의 그 지방 방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사차마도로, 1861년 대동여지도에는 녹둔도로 표기되었다.

-월간아리랑-

이형석(李炯石. 63) 선생은 교육학 박사, 인천 땅이름 연구회, 가천문화재단 문화부장 등 여러 직함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천연구에 일생을 건 최초이자 유일한 전문가'라는 말로 통한다. 하천에 따른 그에 대한 칭호도 '강박사', 그 중에서 강의 발원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강뿌리 박사', 모든 강들을 직접 답사하여 '현대판 김정호'란 별명이 붙어 있다. 그에게 국경하천 압록 . 두만강 그리고 두만강 하구에 자리잡은, 지금은 부당하게 러시아에 넘어가 있는 땅 녹둔도는 그의 연구영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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