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史 > 유적지탐방
연해주대탐사-1 시호테알린은 백두대간과 이어진 산줄기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8.07.24 조회: 796

연해주대탐사-1 시호테알린은 백두대간과 이어진 산줄기

 
시호테알린은 백두대간과 이어진 산줄기

백두대간의 원형, 시호테알린을 가다

특별기획 : 연해주대탐사

시호테알린 산맥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동해안을 달려가는 러시아 연해주 일대는 전형적인 동고서저 지형으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는 한반도 동해안과 매우 유사한 지형구조를 갖고 있다.
연해주 일대는 개발로 훼손되기 전 우리나라 백두대간과 동해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천혜의 생태계 보고이다. 이 지역의 대표 생물종은 ‘조선범’(아무르타이거)과 ‘표범’, ‘반달가슴곰’, ‘연어’와 ‘열목어’, ‘귀신고래’ 등이다.
100년 전 러시아 최고의 탐험가이자 지도 제작자였던 아르세니에프는 원주민 사냥꾼 데르수 우잘라의 안내를 받아 당시 지도상의 공백지역으로 여겨지던 우수리 지방과 시호테알린 산맥 일대를 탐사하고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내일신문 창간 13주년 특별기획 연해주대탐사는 100년 전 아르세니에프의 탐사기록을 따라간다. 100년 후 시호테알린이 얼마나 변했는지 살펴보고 그 속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식물의 생태를 알아본다.


시호테알린 산맥이 몸을 낮추어 백두산으로 달려가는
우수리스크 인근 지역. 해방 300미터 이하의 아주
낮은 산군으로 이어진다.
시호테알린 산맥 중심부.
뒤로 흐릿하게 보이는 산이 우수리강이 발원하는
해발 1854미터의 오브라차나야산이다.

러시아 연해주 = 글·사진 전호성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2006-10-09 오후 2:22:57 게재




시호테알린은 백두대간과 이어진 산줄기

연해주대탐사-1


시호테알린은 백두대간과 이어진 산줄기

우수리스크 북쪽의 작은 산줄기가 분수령 … 동·식물도 우리나라와 닮은꼴

“우수리강과 스위푼강의 분수령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지난 겨울, 연해주대탐사 취재를 기획하던 중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연해주 전체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시호테알린산맥이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분수령)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연해주를 관통하는 우수리강은 북쪽으로 흘러 아무르강으로 합류, 사할린 인근에서 동해로 흘러든다. 백두산 동쪽에서 발원한 스위푼강은 남쪽으로 흘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다를 만난다.
이 두 강의 분수령이 바로 시호테알린산맥이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다. 만약 이 분수령(산줄기)이 없으면 연해주는 ‘바다에 옆에 있는 주’가 아니라 ‘섬’이 되고 만다.

스위푼강 하류
우수리강 본류


◆분수령은 항카호와 우수리스크 사이 =

연해주 전도에서도, 구글어스에서도 이 분수령은 잘 구분되지 않았다. 들여다볼수록 물줄기와 산줄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둥근 단지처럼 생긴 항카호수의 물이 우수리강으로 가는지 스위푼강으로 가는지조차 불분명했다.

연해주 현지로 전화를 걸었다. “항카호의 물이 북쪽으로 흐르는지 남쪽으로 흐르는지 알아봐주세요.”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수백개의 강줄기가 모인 항카호의 물은 단 한줄기로 흘러 우수리강으로 들어간다”는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분수령은 항카호와 우수리스크 사이에 있다는 얘기다.

엉뚱하게도 이 산줄기에 대한 해답은 18세기 조선에서 만든 고지도에 있었다.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地圖)’는 연해주 동쪽 뼈대를 이룬 시호테알린산맥이 항카호 남쪽에서 백두산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옛 조상들은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칙을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우리집 앞마당에서 물을 한번도 건너지 않고 백두산까지 가는 산줄기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백두대간은 단순히 국내용 지리 개념이 아니다. 백두대간은 장백산맥, 천진산맥, 곤륜산맥을 지나 히말라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의 일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럽이나 아프리카 대륙도 하나의 산줄기 체계로 연결된다.


◆동·식물 분포 등 생태적 연관성 높아 =

연해주와 우리나라는 지형적으로 볼 때 무척 닮았다. 연해주의 면적은 16만 5900㎢로 남·북한을 합친 면적 22만 1000㎢에 버금간다.

비킨강 상류 우데게 마을에서 발해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민속화가 이반 둔까이
남·북한에 동해안을 따라 달려가는 백두대간이 있다면 연해주에는 시호테알린산맥이 있다. 산줄기 높이도 600m에서 1900m 정도로 비슷하다. 동쪽 사면이 가파르고 서쪽 사면이 완만한 ‘동고서저’ 형태도 같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동·식물의 분포 등 생태적 연관성도 매우 높다.

그래서일까. 연해주 땅은 우리 한민족과 깊은 역사적 인연을 맺고 있다.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은 명백한 고구려의 영토였다. 고구려 멸망 후에는 발해(698~926)의 동경(東京)이 이곳에 자리잡았다.
19세기 중엽 발해는 동아시아 문화와 교육의 중심이었다. 발해 사람들은 국토를 매우 합리적으로 이용했다. 발해의 큰 도시들은 두만강 접경 하산 군과 우수리스크 일대에 터를 잡았다.

보통 블라디보스토크를 당연히 연해주의 수도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짧은 역사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1860년 러시아의 군사기지로 건설됐다. 러시아 극동함대가 주둔하기 위해서는 넓은 경작지보다 항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려인에겐 ‘아버지의 고향’ =

한인들이 연해주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철종 때인 1863년부터라고 한다. 흉년으로 굶주린 농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조선말에는 항일의병, 일제강점기 때는 항일지사들이 이곳에서 독립의 꿈을 키웠다. 블라디보스토크에 한인들의 촌락인 구한촌, 신한촌이 생길 정도였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기 전까지 연해주는 조선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많은 고려인들이 다시 연해주를 찾고 있다. 연해주는 이들 고려인들에게 ‘아버지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출처 : 내일신문
제목
연해주대탐사-3 백령도와 유사한 지형, 바닷속 갯녹음 심각 2008.07.24
연해주대탐사-2 녹슨 탱크 아래 피어난 희귀식물들 2008.07.24
연해주대탐사-1 시호테알린은 백두대간과 이어진 산줄기 2008.07.24
[기사] 연해주의 역사적 진실 2008.07.24
녹둔도 (鹿屯島) 개관 2008.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