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史 > 독립운동이야기
독립운동(최장기 복역수)鄭伊衡 1897∼1956선생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8.01.07 조회: 1104

독립운동(최장기 복역수)鄭伊衡 1897∼1956선생

 

일제시대 최장기 복역 독립운동가로 광복후 친일 파 청산운동을 주도했던 정이형(鄭伊衡 1897∼1956) 선생이 옥중에서 딸에게 보낸 서신이 63년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미안해 하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딸 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이 편지는 독립운동가의 영웅적인 대외활동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선생이 일제에 항거하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마포형무소에 복역하던 1941년 당시 이화여고보 3학년에 다니던 맏딸 문경씨(서울 성북구 정릉)에게 보내기 위해 쓴 이 편지는 불온하다는 이유로 배달되지 못했다가 광복 후 문경씨에게 전달돼 이 번에 공개될 수 있었다.

옥중에서 외부 유출이 불허 된 서신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목숨까지 내걸고 일제에 맞설 정도로 강인했지만 딸과 관련해서는 걱정과 고민을 숨기지 않았 던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내면세계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수원대 사학과 박환 교수는 "지금까지 연구는 항일투쟁에 초점이 맞춰져 독립운 동가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나 이번에 외부유출이 금지된 서 신이 공개됨으로써 단순한 영웅이 아닌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독립운동가의 진면모를 그려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선생은 이 편지를 통해 딸에게 주변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정조관념을 지키고 타락한 시대상에도 불구하고 학문과 인격도야를 위해 힘쓸 것을 당부,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일제 말 급격한 서양문화의 유입과 기성질서에 대한 반발심리 등으로 성윤리가 문란해진 세상에 노출돼 있는 딸을 걱정하면서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과 애절함이 편지에 물씬 배어있는 것이다.

편지에는 또 학창시절의 품행은 일생을 좌우하는 만큼 본인은 물론,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된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행동거지에 각별히 신경쓸 것을 바라는 부 정(父情)도 담겨져 있다.

선생은 1920년대 만주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단체인 대한통의부, 정의부 등에서 무장투쟁을 주도했고 1925년 3월에는 정의부 의용군 제6중대장으로서 벽동(碧潼)경 찰서 여해(如海)경찰출장소를 습격해 일본 순사 3명을 살해했다.

선생은 또 정당조직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23년 다물청년당을, 19 26년에는 만주 지린(吉林)에서 국내외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망라하는 고려혁 명당을 조직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선생은 1927년 하얼빈(哈爾濱)에서 일경에 붙잡혀 신의주로 압송돼 재판에 회부됐으나 법정에서 독립운동가임을 밝히고 불공정한 재판절차에 강력 항의하는 등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1927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서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이다"라고 밝힌 뒤 자신의 입장을 자세히 공술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심리를 거부하는 등 일 제의 법정신문에 끝까지 굴하지 않고 저항했던 것이다.

선생은 1928년 4월 20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평양과 서대문, 마포, 대전 형 무소 등을 전전하며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으로 출옥할 때까지 무려 18년5개월17일간 투옥돼 일제하 최장기 복역수로 기록됐다.

해방 이후에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으로 활동하며 부일.반역.전범.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의 제정을 주도하는 등 친일파의 척결을 위해 투쟁했으며 남북협상에 참가하 는 등 통일운동에도 기여했다.

-----------------옥중서신 전문-------------------

다음은 봉투 겉면에 `府內 貞洞町 32번지 이화고등여학교 기숙사내 鄭文卿 殿.경성부 현저동 101번지 부 鄭元欽(정이형) 寄'로 쓰여진 이 편지의 전문이다.

『 가정의 은택을 맛보지 못하는 문경에게 가장 유효한 시기에 품행에 대한 조언을 주지 못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아버지는 장소의 불길과 편지의 부자유도모다 불구하고 이 편지를 써서 보내오니 부디 잘 이해하고 깊이 명심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옥엽이에게도 보여주고 잘 지도하여 주기를 부탁하노라. 우리 조선사회가 부패한 제일의 要한 원인은 남녀를 물론하고 정조관념이 박약한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를 물론하고 교양이 높은 극소수의 인사를 제한외에는 남성의 정조관념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회에 태어난 조선여성들은 참말 불행입니다.

그러므로 남성에 대한 주의는 언제든지 극히 삼가고 깊이 조심하지 아니하면 안될 것입니다.

장래사회에 지도적 입장이 되려거든 상류사회의 행복을 누리려거든 먼저 자기자신이 단정한 품행을 가져야 하는 것은 물론임이라.

현대 소위 신여성이라는 그네들이 구사회에 갓쳐 있는 閨門을 열고 나와서 하여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데 남성의 放蕩한 악습에 물이 들어서全般社會를 부패하게 하고 있는 현상이야 참으로 한심하지만 절대로 그런 사람들에게 물들지 말도록 공부하기를 바라노라.

공부하는 이상은 글자만을 배우는 것 아니요. 자기 인격을 향상하기 위하야 하는 것이니 절대로 악습관에 감염되지 말고 汚風俗에 타락하지 말기를 바란다.

여성의 태도는 모직물같이 유화하고 여성의 의지는 鋼製品같이 강인하여야 함이라. 아모리 꺽어도 꺽이지 않고, 아무리 밟아도 밟펴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함이다.

언제든지 남녀동등의 인격을 보존하여야 할 것이다.

女學時代의 품행은 자기일생을 두고 중대한 영향을 가지는 것이니 문경의 장래를 위햐여 명예상 주의할 것이며, 불행한 아버지의 명예를 생각하여서라도 부디 주의하시기를 천만번 부탁하고싶습니다.

앞으로 상급학교 들어갈수록 교제는 넓어지고 신분은 높아지는 것이니 장래가원대한 청년의 남성 한사람이라도 못쓰게 만들지 말며 장래가 무한한 자기의 인격상소호라도 오점이 없도록 근신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같이 순결하고 그 품행을 더욱 더욱 고상하게 하는 것이 공부니가 부디 아버지의 편지를 헛되이 보지 말아주기를 부탁한다.

감옥에 있는 아버지 원흠 서. 10월 7일』

제목
독립운동관련 추천책 2008.01.07
박정희(일본장교)독립군토벌 행적증언 2008.01.07
독립운동(최장기 복역수)鄭伊衡 1897∼1956선생 2008.01.07
김구 암살 관련 미 정보문건 전문(번역) 2008.01.07
삼일운동(三一運動) 배경과 독립운동 2008.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