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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의 침략과 개항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8.03.19 조회: 2094

강화도 조약과 개항


고종에게 권력을 이양한 흥선대원군

1873년, 조선조정에서는 10년 동안 정권을 잡았던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정치전면에 등장하였다. 고종의 친정을 시작되었으나 정권은 민비의 외척들인 민씨척족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민씨척족정권은 흥선대원군이 취하였던 강력한 척사양이정책과는 달리, 정계 일부에서 자라고 있던 대외개방의 움직임으로 대외정책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조선근해를 무단으로 침범했던 일본군함 운요호

이러한 조선의 정황을 탐문한 일본은 1875년 통교교섭 사신을 조선에 파견하였으나 교섭은 성립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정부는 조선과 통상의 빌미를 만들기 위하여 군함인 운요호를 조선 근해에 파견했다. 운요호는 측량을 빙자하여 동해안 일대의 해로측량을 하고 아울러 함포시위도 벌였다. 또한 운요호는 강화도 앞바다에 출동하여 조선의 수비병들에게 위협을 하였고, 이에 조선수비병이 운요호에 발포하는 운요호 사건이 일어났다. 조선 수비병의 공격을 받은 운요호는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이것은 통상요구를 위한 빌미로 악용되고 말았다.

1876년 정한론이 대두되던 일본 정부에서는 전권대신 일행을 조선에 파견하여 운요호의 포격에 대하여 조선조정에 물으며 조선의 개항을 강요하였다. 같은 해 2월에는 일본 사신 일행이 군함 2척, 운송선 3척에 약 400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강화도 갑곶에 상륙하여 협상을 강요해왔다.


강화도 조약 회담 당시의 모습

일본의 무력시위에 놀란 조선조정은 1876년 국제관계의 대세에 따라 수호통상의 관계를 맺기로 결정하고 강화도조약을 맺었는데 그 주요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1조, 조선은 자주국으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제5조, 조선은 부산 이외의 두 항구를 20개월 이내에 개항하여 통상을 허용한다.

제7조, 조선은 일본의 해안측량을 허용한다.

제10조, 개항장에서 일어난 양국인 사이의 범죄사건은 속인주의에 입각하여 자국의 법에 의하여 처리한다.

일본의 무력시위 아래 체결된 강화도조약은 모두 12개조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에는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세력을 조선에 침투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이 조약으로 인하여 조선은 청으로부터 독립된 자주국임을 일본에게 인정받지만 이는 일본이 청나라의 간섭 없이 조선에 대한 침략을 자행하려는 수단이었다. 또한 조선에서 일본 외교관의 여행자유를 보장하고 개항장에서 일본 거류민의 거주 지역 설정과 일본 화폐 유통이 허용되었으며 수출입 상품에 관세를 물리지 못하게 하여 일본의 군사적·경제적 침략에 유리하게 적용되었다. 조선이 비록 강화도조약으로 인하여 서양 여러 나라와 통상을 시작하게 되고,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서양의 신문명을 수입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열강의 침략을 받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고 이후 서구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조약의 선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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