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4.02.28. 오전 9:17 최종수정 2004.02.28. 오전 9:17
우여곡절 끝에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안이 마지막 한점을 남기고 다시 벽에 부딪쳤다. 한나라당이 27일 추가 검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이날 본회의 상정을 보류시킨 탓이다.
그 결과 1949년 반민특위 무산이후 반세기만에 간신히 다시 잡은 친일청산 기회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16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본회의는 사실상 다음달 2일 단 하루만 남은데다 한나라당이 막판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법안 처리에 실패할 경우 진상규명법은 16대 국회 폐회와 함께 자동폐기된다.
◇무산 안팎=법안 처리 무산은 이날 아침 일찌감치 예상됐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여곡절 끝에 법사위를 통과한 친일진상규명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있다”며 여론의 도움을 구했다.
이에 대해 홍사덕 원내총무는 “법사위에서 수정된 내용을 의원들이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본회의 상정을 보류했다”고 해명했다.
한 당직자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원들 요구가 거셌다”며 “3월2일 본회의 상정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보수파와 소장파간의 권력투쟁 양상이 벌어지는 등 당내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미처 법안이 미칠 파장을 예상하지 못해 일단 미뤄놓고 보자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상임연구원은 “절름발이 법안의 통과도 저지된다는 것은 친일 기득세력이 한국사회에 공고한 방어벽을 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개탄했다. 독립유공자유족회 김삼열 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 3·1절에 탑골공원 행사후에 규탄 대회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전망=현재로선 한나라당이나 박관용 국회의장만 쳐다봐야 하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이 법안 처리에 부정적일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다. 실제 이날 본회의에서 ‘6·25전쟁 휴전 이전 민간인희생사건 진상규명법’이 의사일정에 추가되자, 법안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제히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면서 무산된 것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일단 상정돼 표결에 들어갈 경우 통과는 거의 확실시 된다. 친일청산이라는 역사적 대의에 반대표를 던질 배짱 좋은 의원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안 상정 자체를 막는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에 나설 경우 유일한 길은 박의장이 직권상정하는 방안이다. 김희선 의원 등 민족정기의원모임 소속 의원 10여명은 박의장에게 “16대 국회 마지막을 마무리한다는 의지로 직권상정을 고려해 달라”고 박의장을 압박했다. 박의장은 “개인적으로 당연히 해야할 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할일은 다 하겠다”고 답변했다.
〈김광호기자〉
기자 프로필
Copyright ⓒ 경향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