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친일진상규명법 통과 ‘미궁속’

기사입력 2004.02.27. 오후 11:23 최종수정 2004.02.27. 오후 11:23

우여곡절 끝에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이 마지막 한점을 남기고 다시 벽에 부딪쳤다. 한나라당이 27일 추가 검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이날 본회의 상정을 보류시킨 탓이다. 그결과 1949년 반민특위 무산이후 반세기만에 간신히 다시 잡은 친일청산의 기회가 다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제 16대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본회의는 사실상 다음달 2일 단 하루만 남은데다 한나라당이 막판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법안 처리에 실패할 경우 진상규명법은 16대국회와 함께 자동폐기된다. ◇무산 안팎=법안 처리 무산은 이날 아침 일찌감치 예상됐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여곡절끝에 법사위를 통과한 친일진상규명법의 본희의 상정을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있다”며 여론의 도움을 구했다. 김대표는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대해 홍사덕 원내총무는 “법사위에서 수정된 내용을 의원들이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본회의 상정을 보류했다”고 해명했다. 이날 진상규명법 처리는 지난 25일 4당 원내대표·총무회담의 합의사항이다. 한 당직자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원들 요구가 거셌다”며 “3월2일 본회의 상정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보수파와 소장파간의 권력투쟁 양상이 벌어지는 등 당내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미처 법안이 미칠 파장을 예상하지 못해 일단 미뤄놓고 보자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민족문제 연구소 김민철 상임연구원은 “절름발이 법안의 통과도 저지된다는 것은 친일 기득세력이 한국사회에 공고한 방어벽을 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역사청산의 길은 요원하다”며 개탄했다. 독립유공자유족회 김삼열 회장은 “이번 사태를 볼 때 민족정기,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진 것을 보여 주는 현주소”라면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3·1절에 탑골 공원 행사후에 규탄 대회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전망=현재로선 한나라당이나 박관용 국회의장만 쳐다봐야 하는 형국이다. 원내 과반수가 넘는 한나라당이 법안 처리에 부정적일 경우 현실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는 탓이다. 실제 이날 본회의에서 ‘6·25전쟁 휴전 이전 민간인희생사건 진상규명법’이 예상을 깨고 의사일정에 추가되자, 법안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제히 본희의장을 빠져나가면서 무산된 것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일단 상정돼 표결에 들어갈 경우 통과는 거의 확실시 된다. 친일청산이라는 역사적 대의에 반대표를 던질 배짱 좋은 의원을 많지 않은 까닭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안 상정 자체를 막는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에 나설 경우 유일한 길은 박의장이 직권상정하는 방안이다. 김희선의원 등 민족정기의원모임 소속 의원들 10여명이 이날 본희의 산회직후 박의장을 찾아간 것도 그런 이유다. 박의장은 “내가 할일은 다 하겠다”고 직권상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김광호기자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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