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룡 1881~1967.01.05





1910년 망국 후 1913년 중국 만주로 이주해 조국 독립의 방도를 모색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지린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 등지에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독군부(督軍府)·충의단(忠義團) 등에 관계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7월에는 동빈현(同賓縣) 원가둔(袁家屯)에서 혁신단(革新團) 결성에 참가했다. 혁신단은 민족주의 독립운동 단체로서 동빈과 왕청일대를 무대로 활동했다. 그는 1926년 말 혁신단 모연대장(募捐隊長)에 선임되었으며, 1927년 지린성 영안현(寧安縣) 동경성(東京城)에 무관양성소를 설치하고 1928년에는 혁신단 결사대장(決死隊長) 등으로 활동하다가 중·러 국경에서 중국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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