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문제 ICJ 제소 제안, 그 대응 방안은…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3.03.25 22:09



“독도는 역사적인 문제… 국제재판 통한 해결은 불가”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물이다. 해방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이 섬에 손을 대는 자는 모두 한민족의 완고한 저항을 각오하라.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 ‘영예의 닻’이다. 이것을 잃고서야 어지 독립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일본이 ‘독립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1954년 9월 25일 일본 정부가 우리 외교부에 최초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공식 제의했을 때, 당시 변영태 외교부장관이 발표한 특별 성명이다. 즉, 독도문제는 국제법적 관점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결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주권의 문제라는 것.


강창일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동아시아역사시민네트워크(44개 단체·상임공동대표 이장희), 독립유공자유족회(회장 김삼열)가 25일 오전 여의도 국회헌정기념관에서 공동 개최한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에 대한 대응방안’ 세미나에 참석한 국제법 및 독도 전문가들은 일본의 독도문제 ICJ제소 제안은 강력히 거부해야 한다며, 국제평화와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독도의 실효적 지배조치 강화는 평화적으로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선의 해결책, 일본 스스로 중단하는 것”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에 따르면, 일본의 ICJ 제소 제안은 1954년과 1962년(4차례), 그리고 2012년 단독 제소 시도에 이르기까지 총 6차례 있었다. 지난해 단독 제소 시도는 국제법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행위로서 ‘국제법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비우호적인 행위’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또한, 일본은 지난해 11월 독도문제 대책기구로서 ‘다케시마 문제 대책준비팀’을 만들었고, 지난 2월 5일 이를 확대·개편해 독도문제를 총괄·조정하는 ‘영토·주권 대책 기획조정실’이란 부서를 내각 관방 내에 설치했다. 특히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島根県)은 ‘다케시마의 날’ 여덟 번째 행사를 가졌다.


홍 연구위원은 “일본이 이렇게 조직적인 도발을 감행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국내외에 (독도분쟁)여론을 확산시키는 것”이라며, “일본은 독도문제를 남쿠릴열도와도 긴밀히 연계해 나갈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머지않아 집권 자민당이 정책 공약으로 내세운 정부 주최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도 밀어붙일 뿐만 아니라 ‘독도 관련 내각부서 설치’, ‘ICJ 일방 제소 강행’도 감행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홍 연구위원은 “우리 국민들은 독도문제를 20세기 초 일본의 불법적인 한반도 침략에서 비롯된 역사문제로 보고 있다”며, “역사문제를 국제재판을 통해 풀고자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이 ICJ 제소를 제의하는 국제법상 이유는 한국의 실효적 지배(effective control)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것과 한국이 독도에 관해 영유권 분쟁의 존재를 인정토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홍성근 연구위원은 “독도문제가 국제재판을 통해 최종 해결될 것인가 하는 것은 한일 양국 국민들의 의사와 의지에 달려 있다”며, “우리 헌법 제60조 제1항에 의해 독도문제의 국제재판 해결은 주권의 제약 등에 관한 사항이므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ICJ 회부는 외교, 국방,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주요 정책에 해당되므로 대통령은 헌법 제72조에 따라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여 국민의 의사와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제해결의 바람직한 방법은 불법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을 일본이 스스로 중단하는 것이다”며, 과거 17세기 말(1693~1696) 일어난 한일 간에 울릉도를 둘러싸고 벌인 치열한 영유권 논쟁을 사례로 제시했다. 3년간의 논쟁 끝에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당시 울릉도 일본명칭)는 조선의 것’임을 인정했고, 1877년 일본 메이지 정부의 최고 기관인 태정관은 1696년의 결정을 기반으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는 지령까지 내린바 있다.


홍 연구위원은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형성과 동북아에서의 평화증진을 위해서는 독도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며, “그 해결은 일본이 17세기 말 있었던 과거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중단하는 데에서 이루어질 것이다”고 덧붙였다.



▲ 왼쪽부터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이동원 독도조사연구학회 부회장,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ICJ 제소, 한국은 잘해야 본전… 일본은 못해도 본전”


이동원 독도조사연구학회 부회장에 따르면, 일본이 외무성 홈페이지를 통해 제기하는 주요 쟁점들로는 △다케시마의 시마네현으로 편입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다케시마 문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의 다케시마 △미군 폭격훈련구역 지정과 해제(일본 지역주민 요청으로 해제 주장론) △이승만 라인 설정과 한국의 다케시마 불법점거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제안 등이다.


시마네현으로의 다케시마 편입(1905년)과 관련해,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제41호로 독도를 한국영토로서 서양 국제법을 참조해 세계에 재공표했다. 이에 따라 1905년 한국정부 모르게 비밀리에 독도를 무주지로 전제하고, 영토에 편입한 일본의 행위는 원천무효다. 또한, 1946년 1월 연합국은 독도를 한국영토로 확인하고,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군령을 선포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연합국의 대일본 평화조약에서 일본의 독도침탈 로비는 결국 실패했고, 독도는 한국영토로 재확인 일본영역에서 제외됐다. 유엔군은 1951년부터 오늘까지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지해 한국영토·영공으로 포함시켜 식별하고 있다. 1952년 9월 15일 미 공군폭격기의 독도에 대한 폭격연습과 관련해, 당시 우리 외교부의 항의 서한과 주한미대사의 해제 답신은 미국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동원 부회장은 국제관습법에 의해 인정된 이승만 라인(해안경비대 파견) 등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영유 논리를 무력화하는 역사적 사실과 논리를 제시하며, “한국이 일본의 재판소 회부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국은 일본과 대등한 소송의 당사자로서 지위를 갖게 된다”며, “한국은 현재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독도에서의 점유가 국제법적 정당성을 잃게 됨으로써 특별협정이나 잠정처분 등에 의해 승소판결을 받을 때까지 독도에 대한 점유를 내놓아야 하거나 적어도 잠정적 무주지 상태로 둬야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재판소에서 승소하면 본전이고, 패소하면 독도를 잃게 된다. 반면, 일본은 못해도 본전. 명백한 우리 영토를 ICJ에 의해 확인을 받아야 하는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 부회장은 “독도는 한국 및 북한, 일본 간의 단순한 영토문제가 아니라 국민국가 일본이 다른 지역과 나라를 침략한 그 자체의 문제고,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으로 영토와 식민지를 획득해 온 세계 근현대사의 문제”라며, “일본이 ICJ 회부에만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국제관계의 원만한 처리를 통해 국제평화를 지향하는 UN헌장 정신에도 부합되지 않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조용한 외교’, 국제법상 묵인 효과 유발 소지”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은 원칙적으로 임의 관할권이며, 양 당사국의 서면에 의한 명시적 재판 관할권 수용 합의 없이는 성립되지 않고 진행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국제 판례는 임의관할의 일환으로 확대관할권을 인정하고 있고, 당사자의 명백한 의사 표시 없이 묵인으로도 재판관할권이 성립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우리 정부가 당당히 주장을 펴지 못하고 무대응과 묵인으로 ‘조용한 외교’를 펼친 것과 관련해, “이는 일본의 잘못된 주장에 대해 국제법상 묵인 효과를 유발해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제대로 강화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신한일어업협정(1998) 체결과정에서의 실수, 명칭조차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부르는 ‘다케시마’로 왜곡돼 통용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독도의 실효적 지배 강화조치를 평화롭게 지속하는 방안을 치밀하게 강구해야 하며, 국지전이나 전쟁에 준하는 무력충돌이 독도에서 일어나서는 결코 안된다”고 경고했다. 무엇보다 “일본의 ICJ 제소 제의를 단호히 거부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응소 관할권의 빌미를 보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법리가 국제사회와 국제학계에서 중심논리로 인정받는 수준으로 계속 발전시켜 한다”며, “단적인 사례로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의 원천 무효성과 불법성의 논리를 국제학계에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장희 교수는 우리 내부에서도 제대로 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대한민국 건국을 1948년으로 보고 건국 60주년(2008)을 기념하는 등 몰상식한 역사의식을 타파할 것도 주문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용중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지질학적으로 항상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 일본 특유의 열등감과 안정된 땅에 대한 회귀 본능 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지난 40년과는 달리 현재 일본은 사회·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전반적으로 퇴조하고 있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미래를 총체적으로 전망할 필요성이 있다”며, “독도문제는 단칼에 해결하기는 힘들고 좀 더 시간을 갖고 역사적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진 전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도 일본의 전통적 사무라이 약탈문화를 거론하며, 한반도를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자 하는 일본의 전형적인 패턴을 파악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일본의 독도분쟁 조장에 한국이 실질적인 논리와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며, 우리의 행동은 부정적 의미의 ‘강경대응’ 개념이 아닌, 정당한 조치를 취한다는 의미에서 ‘적극적 대응’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규석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독도문제의 ICJ제소 절대 불가 입장을 밝힌뒤 “국제사회의 압력 및 불가항력적 상황으로 인해 ICJ 소송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일본에게 특정한 조건을 달고 소송에 응소하겠다는 의사표시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제의를 수용하는 대신 한국이 ICJ에서 승소한다면, 특정한 조건의 이행을 요청하는 전제조건을 달고 소송에 응하겠다는 의사표시를 전달하는 것도 국제법적으로 합법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한편, 이날 세미나 이후 강창일 국회의원, 동아시아역사시민네트워크, 독립유공자유족회는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의 ICJ 제소 관련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일본의 ICJ 제소 제의 단호히 거부 △일본의 영유권 침탈 야욕 철회 촉구 △독도의 실효적 지배 강화, 평화적으로 지속 △독도문제에 대한 법리적 논리 완비하는데 최선 등을 제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노웅래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 최승환 대한국제법학회장, 이성민 국학운동시민연합 대표, 김영구 려해연구소장(전 부산해양대 교수), 우실하 동아넷 정책위원장(항공대 교수) 외에 독도 관련 시민사회단체 및 독립유공자유족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고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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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재외동포신문(http://www.dongpo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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