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법안 곳곳 제한규정으로 발목 묶여

기사입력 2004.04.28. 오후 5:48 최종수정 2004.04.28. 오후 5:48




[한겨레] 17대국회 바로 펴야할굽은법 ① 친일진상규명법 오는 6월5일 문을 여는 17대 국회에 대한 기대가 높다. 여대야소로의 정치지형 변화가 이뤄졌고 한나라당의 합리적 변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국회는 여소야대인 16대 국회에서 왜곡·변질된 주요 개혁 법안을 바로 잡을 책무를 안고 있다. 해묵은 구시대의 유물을 이번 기회에 청산해야 한다는 바람도 거세다. 새 국회가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주요 법률을 몇차례로 나누어 짚어본다. ‘찬성 151명, 반대 2명, 기권 10명’ 지난 3월2일 국회 본회의에 부쳐진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의 표결 결과는 조금 뜻밖이었다. 법안 통과는 예상됐던 바였지만, 찬성표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많을 것으로 전망한 이는 별로 없었다. 국회 법사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법안 처리 고비고비마다 딴지를 걸고 반대한 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을 앞둔 의원들로선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는 법안을 대놓고 반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투표 방식이어서 법안에 대한 찬반 의사가 훤히 드러난다는 ‘정치적 부담’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많다. 마지막까지 집요하게 법안의 처리를 가로막았던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조차 반대표를 던지지 않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상당수 관계자들은 국회 심의과정에서 애초 법안이 크게 변질되면서 어지간한 친일반민족 행위는 진상규명의 ‘그물’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반대가 적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법안 제정에 그토록 반대하던 상당수 의원들이 찬성으로 태도를 바꾼 것은 이 법안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 아니라, 친일행위 진상규명 활동을 근본적으로 무력화할 독소 조항을 법안 곳곳에 삽입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자신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국회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한 친일진상규명법은 국회 과거사진상규명특위에서 마련한 애초 원안과 크게 다른 내용이다. 특위의 애초 안에 없던 ‘전국적 차원에서’라는 문구를 여러 군데 새로 집어넣은 것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예컨대 진상규명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 가운데 ‘일본군을 위안할 목적으로 부녀자를 강제 동원한 것’은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부녀자를 강제 동원한 것’으로 바뀌었다. 지방에서 군대 위안부 동원에 앞장선 일부 군수·면장 등의 행위는 조사 대상에조차 오르지 못하는 셈이다. 일제 군대에 들어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더라도 계급이 중좌(중령)에 이르지 못한 경우, 일제 사법부에 근무하며 우리 민족 구성원의 감금·고문·학대 등 탄압에 앞장선 행위를 했더라도 판사·검사가 아닌 서기·집달리 또는 형무소 관리인 경우는 친일반민족 ‘기록’ 대상에서 빠지도록 해 놓았다.



‘전국적 차원’ ‘중령 이상’ 조건달고 ‘혐의 공표땐 처벌’ 추적조사 막아 재개정 탄력불구 일부 이견 여전 원안에 없던 내용도 추가됐다. 국회 법사위 심의과정에서 추가된 법 제23조는 ‘조사대상자의 보호’라는 명목 아래 친일반민족 행위 혐의자의 혐의 사실을 언론 등을 통해 알리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또 이를 어길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를 민간 학계의 연구조사나 언론의 추적 보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치명적인 독소조항으로 꼽고 있다. 친일문제 연구자들은 친일진상규명법이 이렇게까지 변질된 데는 16대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법사위 간사를 맡았던 김용균 의원의 구실이 컸다고 보고 있다. 군법무관 출신으로 5공 출범 초기 국보위 전문위원을 지낸 김 의원은 ‘자신의 아버지가 조사대상이기 때문 아니냐’는 등 온갖 비난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차례 수정안을 내어 법안을 바꾸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열린우리당은 원내 소수파라는 한계 때문에 변질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애초 이 법안을 발의한 김희선 의원 등은 이 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건 열린우리당이 4월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17대 국회 초반인 6월에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8월중에 조기 처리하기로 하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법 개정 방향은 국회 과거사진상규명특위에서 의결한 원안을 살려내, 법사위에서 변질시킨 내용을 바로잡는 쪽으로 잡혀 있다. 국회와 각 정당 관계자들은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법 개정에는 큰 걸림돌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도 이 법의 취지에 동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진상 규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인 이 법에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지고 있는 등 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의 가능성은 여전하다. 대놓고 법 개정을 반대하려는 일부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아직 발효도 되지 않은 법을 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넘어야 할 걸림돌이다. 국회 법사위의 열린우리당쪽 간사인 최용규 의원은 “지난번 본회의를 통과한 법은 법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돼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며 “중심을 잃지 않고,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은 “법 개정 작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뜻있는 의원들을 두루 만나고 있다”며 “잘못된 부분을 고쳐 민족정기와 전도된 가치관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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