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 1898.10.12~1984.8.20


1979년 신랑 신부에게 축사를 하고 있는 김산 선생


김산(金山)은 1898년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사범은 간도 국민회 소속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며 형인 김종민 또한 독립운동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총살당하는 등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자라났다. 13세 때 만주 간도에서 소학교를 졸업했다. 항일독립투쟁으로 유명한 관서지방 평안북도 신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 때 경북 안동에서 중학 2년 과정 이수, 서울에 올라와 숭실대학을 졸업한 후, 중국 남경에 있는 금능대학(현 난징대학)에서 신학과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여 1년 간 투옥되었다. 이후에도 혁명단체 한중동지사를 조직하는 한편, 중국 동방약소민족연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상해 임시 정부의 지시에 의하여 독립 운동을 하다가 재차 투옥되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과 YMCA 활동을 했고, 목사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단군정신선양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민족종교와 역사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 8.15 광복 이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중앙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 정치활동 중 이승만 독재정권에 의해 무리하게 구속되었다가 석방되기도 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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